이것저것 기록함
어릴 때부터 엄마가 내게 열심히 한국어를 가르쳐온 이유는, 모국과 모국어에 대한 깊은 애정의 발로 따위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엄마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완전히 이해하는 타인, 모국어의 청취자를 간절히 원했을 뿐이다. 나는 가끔 엄마가 딸의 몸무게가 아닌 영혼의 무게에도 관심이 있는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돼지는 다른 돼지와 구별되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구절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몹시 슬프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어떤 아이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잠시 한눈을 팔아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죄가 또 유예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하고 절망했다. 극적인 파국이 닥치면, 속죄와 구원도 머지않을텐데. 또다시 살아가기 위하여 나는 바다 쪽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일요일 늦은 아침, 침대에 누워 채소 샐러드를 먹으면서 바위와 샥샥의 목덜미를 번갈아 쓰다듬고 있으면 반드시 세계와 내가 이어져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이 제멋대로 나를 침범하고 휘젓는 것을 묵묵히 견디게 하는 건 사랑이지만, 또 그 이유로 떠나기도 하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남자가 사진을 찍으러 무리들 속으로 나간 사이 여자는 혼자 조용히 밖으로 나왔어. 모르는 골목들을 마냥 걸었지. 끝을 자꾸 늦추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생각했지.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는데 문득 옆을 보니 남자가 같이 걷고 있었어. 그 남자는 뛰어나간 여자를 찾아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거야. 남자는 여자가 우는 걸 봤겠지만 눈물을 닦아주지는 않았어. 여자는 이걸로 다 되었다고 생각했어.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은 뱉는 순간 허공에 흩어진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가장 깊은 안쪽에 가만히 모아두고 싶다. 그것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좋아했어. 나 따위 전혀 쳐다보지 않는 옆얼굴을.